얼마 전부터 유선 키보드를 찾고 있었다. 원래는 Matias Laptop Pro를 썼었는데 이 놈은 원래 맥북 에어에 물려서 쓰려고 산 놈을 맥 미니에 물려 쓰게 된 건데 그렇다고 딱히 내 책상이 깔끔해지거나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에 블루투스 키보드라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던 셈. 그냥 맥용+기계식 키보드 라는 점 정도.

그러던 와중에 맥 미니에 부트캠프를 설치하게 되었고 블루투스 키보드로는 부팅 과정에서 부팅 드라이브를 변경하기 위한 option 키를 누를 수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키보드를 찾아보게 되었다.

기왕이면 지금까지 안 써 본 키보드를 써보자 해서(적축하고 갈축은 동생이 가지고 있으니까) 청축, 흑축, 정전용량 키보드로 범위를 줄이게 되었다. 그 중에 정전용량 무접점 키보드가 좋아 보이더라. 이름이 길잖아 무식하긴

아무튼 그래서 결정된 키보드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 정전용량 무접점
  • LED(기왕이면 RGB)
  • 맥용 레이아웃(또는 딥 스위치)
  • 유선 연결
  • 미니 사이즈

사실 비-중국 시장에는 1번과 2번을 만족하는 물건이 없었다. 해피해킹의 경우 LED는 당연히 없고 기판작업을 해서 표시등을 박은 경우 정도가 전부인 듯 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AliExpress에 답이 있었다. 맥용 배열은 아니지만 그건 양보하기로. 문제는 물건을 사려는데 옆에 이런 게 뜨더란 말이지. 청축 기계식 키보드가 배송비 합해서 $47.24 라는데 어찌 지르지 아니하겠는가. 속는 셈 치고 질렀다.

정말로 생전 안 하던 충동구매로 산 물건이 어제 왔다. 기말고사 전 날에 물론 두 과목만 먼저 보고 나머지 과목들은 다음 주에 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날 말려죽이려는 음모가 틀림없다. 기록을 보니 5월 26일 주문, 6월 8일 도착. 당일 배송 당일 수령까지도 가능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느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다만 China Post를 통해서 무료 국제 배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다고 평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켜놓고 한 두어 달 잊어버리고 있으면 정신건강에 매우 이롭다.

package

그렇게 잊고 있다가 받은 물건.

바깥 찍힘

어째서인지 바깥에 찍힘이 있었다. 바깥 상자이니 상관은 없다.

바깥 상자

종이 상자인데 왠지 간결하다. 마음에 들었다.

상자가 하나 더 있다

상자 안에 상자가 있다. 마트료시카냐.

그와는 별개로 안쪽에 있는 검은상자 역시 종이인데 뭔지 모르게 고급스럽다. 맘에 든다.

안쪽 상자

안쪽 상자만 꺼내놓았다. 4만원짜리 치고는 굉장히 고급스럽게 잘 포장해놨다고 생각한다. 검정-빨강 조합도 맘에 들고. 오히려 빨강을 무광으로 해놓았으면 심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 정도.

내부 포장

솔직히 좀 놀란 부분. 4만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했을 때 매우 대충 포장해서 올 것을 생각했는데 챙길 건 다 챙긴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기계식 키보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든가.

키보드

키보드 LED 없는 사진과 LED 있는 사진.

사용 후기

사실 뭘 알아야 후기를 쓰든 말든 하는데 나는 아는 바가 없으니 자랑이 아니다 그냥 쓰면서 느낀 점을 적어볼거다.

  • 일단 소리는 대만족. 딸깍거리는 소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 물론 조용한 밤에 몰래 쓰기는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Laptop Pro가 조용했냐면 그것 역시 아니었으므로…
  • 동생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이 이건 전형적인 청축소린데 라고 하더라.
  • 다만 와서 몇 번 두드려보더니 키감이 왜 이러느냐고 하더라. 키감은 청축보다 적축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다고. 사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드는데? 워낙 Laptop Pro 키가 무거웠기 때문에 무거운 키라면 이제 질색할 지경이다.
  • 크기도 작아서 마음에 들고.
  • 문제라면 역시 키배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오른쪽 Shift 키가 방향키 크기와 같다. 다시 말하면 Laptop Pro 쓸 때 처럼 오른쪽 새끼손가락으로 Shift를 누르면 위로가는 방향키를 누르기 일쑤이다. 신경써서 누르지 않으면 50% 정도는 방향키를 누르는 것 같다. 덕분에 오른쪽 Shift를 누르는 걸 기피하게 되었다. 좋은 디자인이라고 해주기는 힘들 것 같다.
  • 맥용 배열이 아니라는 점도 적지않게 난감하다. 별 거 아니지만 별 거다. Keyboard 세팅에서 Alt 키를 Cmd 키로 바꿔주고 Win 키를 option 키로 바꾸어 주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우측에 있던 option키는 여전히 없는 셈. 덕분에 Tuck 단축키를 바꿔줘야 했다.
  • 위의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항이지만 기능키 또한 100% 활용이 어렵다. F1부터 차례대로 음소거, 멀티미디어, 재생/정지, 음량-, 음량+, 홈, 메일, 키보드 LED 순이다. 당연히 맥에서 멀티미디어, 홈, 메일 키는 작동하지 않는다. F1부터 F8까지 8개 키 중에 2, 6, 7을 못 쓰니 62.5% 정도 활용하는 셈.
  • 기능키에서는 청축 특유의 딸깍소리가 나지 않는다. 동생이 쓰는 갈축 키보드에 가까운 소리(그리고 키감)가 난다.

물론 두 번째, 세 번째는 키 맵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마는, 키보드 맵핑 프로그램은 그닥 달갑지가 않아서 잠시 보류. 아마 지금 오는 녀석도 비슷하다면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할지도 모르겠다.